[imazine] 한국의 고개 ① 박달재

현경숙 / 2021-06-03 07: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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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과 '금봉'의 슬픈 사랑이 얽힌 곳, 이제는 웃고 넘는 고개
▲ 박달재 전경 [사진/조보희 기자]

▲ 박달재 전설의 주인공인 박달과 금봉 동상 [사진/조보희 기자]

▲ 느티나무 고사목에 조각한 오백나한전 [사진/조보희 기자]

▲ 청풍호 유람선 [사진/조보희 기자]

▲ 청풍호를 감상할 수 있는 청풍호반 케이블카 [사진/조보희 기자]

▲ 제천약령시 [사진/조보희 기자]

▲ 소나무 숲이 운치 있는 의림지 [사진/조보희 기자]

[imazine] 한국의 고개 ① 박달재

'박달'과 '금봉'의 슬픈 사랑이 얽힌 곳, 이제는 웃고 넘는 고개

(제천=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산이 많은 한국은 고개도 무수하다. 크고 작은 고개마다 구구절절한 사연 또한 한둘이 아니다.

만남과 이별이 엇갈리고, 그리움과 기다림이 쌓인 고갯마루. 우리 삶에 들어와 있는 고개에는 오늘도 사연이 쌓인다.

고개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일컫는다. 산의 능선이 말안장처럼 움푹 들어갔다고 해서 안부(鞍部)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고개는 함경산맥의 금패령(1,676m)이다. 고개는 영(嶺), 재, 티, 치, 개 등으로도 불렀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 주는 작은 고개가 있는가 하면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는 큰 고개도 있다. 작은 고개는 마을 사람들이 다니던 소통의 길이었다. 큰 고개는 먼 길을 나선 나그네와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길이다.

◇ 울고 넘던 박달재, 이젠 웃고 넘는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한반도는 구석구석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만큼 스토리 없는 곳이 없다. 웬만한 곳이 그러할진대 떠남과 만남이 교차하는 고개는 말할 것도 없다. 작더라도 사연 없는 고개가 없다.

박달재(해발 453m)도 삶의 애환이 얽히고설킨, 사연 많은 고개 중 하나다. 박달재는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와 백운면 평동리 경계에 있다.

2012년 작고한 음악가 반야월 선생이 1950년에 작사한 대중가요 '울고넘는 박달재' 덕분에 모르는 국민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박달재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개 정상에 있는 휴게소에서 흘러나오는 '울고넘는 박달재' 노래가 고갯마루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찌나 가사가 슬프고, 음률이 구성진지 나그네의 가슴을 한순간에 아리게 한다.

박달재에 얽힌 전설이 있다. 조선 중기, 경상도 총각 '박달'이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중 고개 밑 마을에서 '금봉'이라는 처녀를 만나 사랑을 나눈 뒤 혼인을 약속했으나 시험에 낙방해 금봉을 찾아오지 못했다.

매일 고갯마루에 올라 박달을 기다리던 금봉은 병이나 죽고, 금봉의 장사 직후 박달이 금봉의 집에 도착한다. 박달은 고갯마루 근처에서 금봉의 환영을 뒤쫓아가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는다는 게 전설의 내용이다.

예전에 박달재는 제천에서 충주로 넘어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제천에서 서울이나 호남 지방으로 가려면 박달재를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도로가 사통팔달로 건설되고, 1997년 박달재 아래쪽에 터널이 뚫린 뒤 박달재까지 올라오는 차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박달재를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관광객이나 인근에 사는 주민 외에 일반 차량은 거의 다니지 않는다.

박달재에는 옛 국도가 지나간다. 국도 옆에 '박달재 옛길'이 있다. 국도가 건설되기 전에 옛사람들이 다니던 길이다.

고개 주변에는 목각공원, 조각공원이 조성돼 있고 국내 유일의 목굴암이 있다. 공원에는 박달과 금봉의 전설을 주제로 한 조각 작품들이 많다.

목굴암은 성각(成覺)스님이 만든 1인 법당이다. 천년쯤 된 느티나무 고사목 내부에 부처님을 조각해 한 사람이 들어가 참배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느티나무는 수령이 오래되면 속이 썩어 비게 된다. 목굴암은 둘레 8m, 높이 6.5m 크기다.

성각스님은 느티나무 고사목 내부를 다듬고 조각해 목굴암으로 만드는 데 3년 2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목굴암 옆에는 역시 느티나무 고사목에 오백나한을 조각한 오백나한전이 있다.

마침 스님은 달마스님 365분을 모신 법당을 짓겠다며 달마상을 조각 중이었고, 느티나무 고사목으로 산신각을 짓겠다며 또한 작업 중이었다. 숱한 나무 마치가 부서지도록 조각에 몰두하는 스님의 정진은 속인이 범접하기 쉽지 않은 세계였다.

박달재는 박달과 금봉만 울고 넘은 게 아니었다. 아흔아홉 굽이로 돌아가는 박달재를 넘어 시집가는 새색시는 친정에 다시 오지 못할까 서러워 울었고, 나그네는 첩첩산중에서 산짐승이나 도적을 만날까 봐 가슴 졸였다.

고려 시대 김취려 장군은 1216년 거란족이 침입했을 때 박달재의 지형을 이용해 승리를 거뒀다. 지금은 잘 닦인 도로 덕분에 쉽게 지나다니지만, 옛날 박달재는 그만큼 지형이 험했다.

이제 박달재는 울고 넘지 않는다. 웃으며 즐겁게 넘는다. 명승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주로 넘는 고개이기 때문이다.

아기자기한 공원과 옛길, 희귀한 목굴암 등 이런저런 볼거리를 즐기다 보면 온종일 반복되는 '울고넘는 박달재' 노래에도 서글픔을 느끼기보다 힐링 모드로 젖어 들게 된다.

박달재는 시랑산 자락에 있다. 비와 안개에 젖은 5월의 시랑산은 그윽하면서도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웠다.

산의 색은 언제 가장 어여쁜가. 잎이 시드는 가을에는 단풍 든 나무가 예쁘지, 산의 색이 고운 것은 아니다. 겨울 설산이 멋진 것은 정갈하기 때문이다. 여름 산은 짙푸를 뿐이다. 신록이 한창인 5월의 산은 옅은 연두, 짙은 연두, 연초록, 초록, 진초록 등 다채로운 초록빛이 향연을 이룬다. 산의 색이 연중 유달리 예쁠 때다.

박달재를 웃고 넘는 이유는 또 있다. 박달재를 방문한 관광객은 무엇보다 제천의 수려한 자연이 선사하는 행복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숨은 원석'처럼 아름다운 청풍호

제천은 관광지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보석 같은 곳이다. '육지 속 바다'로 불리는 청풍호는 장대할 뿐 아니라 물이 더할 수 없이 맑고 푸르다.

청풍호는 충주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거대한 인공호수 중 제천 구역을 말한다. 충주 쪽 호수는 충주호, 단양 쪽 호수는 단양호라고 칭한다.

청풍호는 충주댐이 담고 있는 물의 60%가량을 안고 있다. 청풍호반 케이블카를 타고 비봉산에 오르면 마치 다도해 위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비봉산은 청풍호 중앙에 위치한 해발 531m의 명산이다. 산세가 비상하는 봉황을 닮았다.

케이블카는 청풍면 물태리에서 비봉산 정상까지 2.3㎞를 9분 만에 운행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비봉산 제일 높은 곳에 오르니 360도 사방에 가득 펼쳐진 게 연봉으로 이어진 수려한 산과 푸른 호수였다.

비구름이 몰려왔다가 금방 어디론지 흩어졌다. 비경에 취해 한국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또 있었나 생각해봤다. 얼른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그만큼 장관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이 풍경 실화야?"

우리는 우중의 청풍호와 맑은 날의 청풍호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맑은 날은 케이블카가 아니라 대형 관광 배를 타고 청풍나루에서 단양의 장회나루까지 왕복하며 청풍호를 감상했다.

이 코스에서는 호숫가에 있는 청풍문화재단지, 옥순봉, 구담봉, 금수산 등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금수산은 이름 그대로 산이라는 비단 자락에 바위들이 수를 놓은 듯 경관이 빼어났다. 옥순봉은 죽순같이 솟아오른 바위가 마치 옥처럼 기품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들은 절경 중의 절경이었고, 더 할 수 없이 청정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감명을 준 것은 청풍호의 맑은 물이었다. 청풍호의 물은 서울의 한강, 팔당호 등에서 보던 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비췻빛이었고 수정처럼 맑았다.

스위스의 레만호나 프랑스의 에비앙 호수가 맑은 물과 엄격한 물관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지만, 청풍호는 그 호수들보다 훨씬 깨끗하고 투명했다.

정복순 제천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청풍호 주변에는 오염원이 될 만한 공장이 없는 데다 수질관리가 엄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이 깨끗하고 풍광이 수려한 청풍호나 제천이 관광지로 덜 알려진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충주호, 단양팔경 등으로 이름난 충주와 단양 가까이 있는 바람에 두 지역의 명성에 가려졌던 게 아닐까.

예전에는 제천 주변 도로 사정이 지금처럼 좋지 않기도 했다. 현재는 제천평택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가 제천으로 이어진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대구, 전주와 함께 3대 약령시가 있었던 제천은 자연 채취한 한약재와 약선음식으로도 유명하다. 감염병 사태가 지나가면 제천은 내륙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를 것 같다.

◇ '제천 1경'이자 한반도 농경문화의 발상지, 의림지

박달재가 유명하고 청풍호가 아름답지만 '제천 1경'은 따로 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인 의림지다.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에 축조된, 한반도 농경문화의 발상지다. 벽골제와 수산제는 흔적만 남아 있지만, 의림지는 여전히 드넓은 농토에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저수지 기능을 현대 저수지 못지않게 당당히 수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풍광이 여느 관광지에 뒤지지 않게 멋스럽다. 시민에게는 쉼터이고, 여행객에게는 가보고 싶은 관광지다.

호반의 둘레는 1.8㎞, 수심은 8m에 이른다. 의림지 주변에는 200∼300년 된 소나무와 수양버들이 숲을 이뤄 제림(堤林)이라 불린다.

의림지 위쪽에는 1970년대 만들어진 '제2 의림지'라는 작은 저수지가 또 있다. 의림지가 마르지 않도록 의림지에 물을 꾸준히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제2 의림지 역시 저수지인 동시에 휴식 공간으로 잘 가꿔져 있었다. 의림지보다 더 아담하고 청정하다. 선인의 지혜를 후손이 계승한 본보기이리라.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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