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n스토리] 청와대 출입기자서 전통 명장으로…늦깎이 전각·서예가 김상헌

백나용 / 2021-06-09 08: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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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정착 후 57살부터 서울 나들며 배워 81살에 마지막 회고전
"서예와 전각 병행해야만 오롯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
▲ 인터뷰하는 김상헌 명장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월봉 김상헌 명장이 그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제주문예회관 제1전시실에서 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1.6.8 dragon.me@yna.co.kr

▲ 김상헌 명장이 영주십경을 소개하는 글귀를 돌에 새긴 전각 작품 [촬영 백나용]

▲ 김상헌 명장이 자신을 비유한 용을 돌에 새긴 전각 작품 [촬영 백나용]

▲ 김상헌 명장의 잠수녀가(潛水女歌) 10곡병 [촬영 백나용]

[휴먼n스토리] 청와대 출입기자서 전통 명장으로…늦깎이 전각·서예가 김상헌

제주 정착 후 57살부터 서울 나들며 배워 81살에 마지막 회고전

"서예와 전각 병행해야만 오롯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선뜻 알아볼 수 없는 한자들이 빼곡히 새겨진 성인 얼굴 크기만 한 매끈한 돌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옛 선인들이 뛰어난 제주 경승지 10곳을 골라 이름 붙인 영주십경(瀛州十景)을 설명한 글이다. 돌의 앞과 뒤 그리고 양옆에 새겨진 제1경부터 10경까지 각각의 명칭과 그에 대한 설명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작품의 아름다움보다 족히 600자는 되어 보이는 이 글을 얼마나 공들여 새겨 넣었을까, 얼마나 오래 걸려 완성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대한민국 전통명장 전각 부분 제1호인 월봉 김상헌(81) 옹이 한 땀 한 땀 칼로 새겨놓은 전각작품이다.

바로 뒤편에는 축구 골대보다 긴 8m 길이의 잠수녀가(潛水女歌) 10곡병(曲屛)이 보였다. 10곡병은 여느 서예전에서는 보기 힘든 대작으로, 저절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예와 전각에 문외한인 기자였지만,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작가의 내공이 느껴졌다.

특히 같은 반야심경 구절이 담긴 작품이라도 서체와 글자의 배열, 크기를 달리하고 종이와 옥, 돌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면서 보는 이에게 다양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했다.

김상헌 옹은 지난 6년간 작업한 전각과 서예 작품 100여 점을 모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회고전을 마련했다. 2007년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시와 2009년 서울 인사동 라메르갤러리 전시, 2015년 제주문예회관 전시에 이은 네 번째 개인전이다.

지난 5일 시작된 제주도문예회관에서의 이번 전시는 10일로 끝난다. 7일 전시실에서 그를 만났다.

충청북도 영동 출신인 김상헌 옹은 1960년대 초 MBC 기자로 청와대를 출입하다 일에 회의를 느껴 10여 년 만에 사표를 냈다. 그 후 전국을 돌아다니다 1981년 41살에 제주에 내려와 정착했다.

제주도 사람들의 순수함이 좋아 제주를 사랑하고, 제주에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서예와 전각에 입문할 때는 제주에 내려와서도 16년이 지나서였다.

특별하거나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7살 때부터 서당에 다니며 한학을 배우고 붓을 가까이 두었던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다고나 할까.

제주에서 학습지 회사 지사와 학원을 운영하던 그는 57살 늦깎이로, 제주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던 당대의 서예가 삼농 김구해 선생 문하에서 처음 전각을 배웠다. 제주전각학연구회 창립을 주도해 창립전과 2차례 교류전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서울에 있는 정문경·여원구 선생 등을 스승으로 모시고 매주 한 번꼴로 상경하며 전각을 연마한 끝에 제주도서예대전 사상 첫 전각 초대작가에 선정됐다.

또 대한민국서예문인화대전을 비롯한 각종 공모전 초대작가에 이름을 올렸고, 2008년 그랑프리미술대전 전각 대상을 받았다.

그는 그동안 동물 뼈나 기와, 옥에 글씨를 새기는 전각뿐만 아니라 전서와 예서, 해서, 갑골문까지 7∼8개 한문 서체를 연마해 폭넓은 서예 세계를 구축했다.

김상헌 옹은 "서예의 경우 글씨를 쓰는 것은 사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며 "다만 보는 이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작품 디자인을 기획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그는 "전각, 특히 갑골문의 경우 소나 돼지의 엉치뼈를 구해 삶고 우려내 식초에 담가 기름을 빼고 방부 처리를 하는 데만 꼬박 3개월이 걸린다. 여기에 장문(長文)을 새기는 데도 3개월을 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예, 조각, 회화와 결합한 아름다운 예술인 전각을 수천 년을 가는 무변(無變)의 상징이라고 칭했다.

그는 서예와 전각 둘 중 하나를 제대로 연마하기도 쉽지 않지만, 서예와 전각을 병행해야만 오롯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예로 제주가 낳은 서예 대가 현중화 선생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1997년 현중화 선생이 타계 40여 일 전에 뵀더니 당신 작품을 한 점도 못 남겼다고 하셨다. 그 말은 서예가들이 자신이 써놓은 글씨에 다른 사람이 만든 낙관을 찍기 때문에 온전한 자신의 작품이 아니란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전시가 평가를 받고자 하는 자리가 아닌 마지막으로 그동안의 시간을 뒤돌아보는 자리라며 미소 지었다.

"밥 한 그릇에 된장국만 차려도 밥상이오, 진수성찬을 차려도 밥상"이라며 "마찬가지로 좋은 것도 구경거리고 나쁜 것도 구경거리니, 그냥 '김상헌이 이렇게 살다가는 구나'라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전시를 감상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에 대한 애정도 내비쳤다.

김상헌 옹은 "제주에서 40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육지 놈이란 소리를 들어 속이 상한다"며 "그래도 앞으로 여생을 후학 양성에 바치겠다. 제주 작가들이 중앙무대 진출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그가 양성한 초대작가만 해도 벌써 100명이 넘는다.

그러면서 그는 "전각과 서예를 통해 사람들에게 제주의 가치를 일깨우는 데도 힘을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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