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저항시인 고 김지하 영면…가족장으로 엄수(종합)

이재현 / 2022-05-11 10: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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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문화예술계 배웅 속 장례…부인 묻힌 흥업면 선영에 안치
고인 49재 맞춰 내달 25일 화해와 상생 차원 추모문화제 개최
▲ 김지하 시인 발인 (원주=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11일 오전 강원 원주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2022.5.11 hak@yna.co.kr

▲ 김지하 시인 장례 예배 (원주=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11일 오전 강원 원주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김지하 시인의 장례 예배가 열리고 있다. 2022.5.11 hak@yna.co.kr

▲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선영 [촬영 이재현]

▲ 김지하 시인 발인 (원주=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11일 오전 강원 원주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2022.5.11 hak@yna.co.kr

▲ 원주에 마련된 시인 김지하의 빈소 [촬영 이재현]

'타는 목마름으로' 저항시인 고 김지하 영면…가족장으로 엄수(종합)

유족·문화예술계 배웅 속 장례…부인 묻힌 흥업면 선영에 안치

고인 49재 맞춰 내달 25일 화해와 상생 차원 추모문화제 개최

(원주=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저항시로 1970년대 독재정권에 맞선 저항시인 김지하(본명 김영일)가 11일 영면에 들었다.

지난 8일 81세 일기로 타계한 김지하 시인의 발인식은 이날 오전 9시 강원 원주시 연세대학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애도 속에 엄수됐다.

발인식에는 고인의 두 아들인 김원보 작가와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생전 김 시인과 인연이 있는 이들이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을 배웅했다.

고인의 영정을 든 차남 김 이사장의 뒤로 운구 행렬이 이어졌고, 그 뒤를 장남 김원보 작가를 비롯한 유족들이 따랐다.

고인의 8살 손자도 흐느끼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판소리 명창 임진택 연극 연출가, 이청산 전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장 등 문화예술계 지인과 후배들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차남 김 이사장은 앞선 가족예배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 해 주신 모든 분께 가족을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청산 전 이사장은 "서슬 퍼런 독재정권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김지하라는 우리들의 정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 땅의 민주주의 초석을 놓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고인의 유해는 오전 10시 화장한 뒤 부인 김영주 씨가 묻힌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선영에 안치했다.

고인은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의 외동딸이자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낸 김씨와 1973년 결혼했다. 2019년 11월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김씨와는 3년여 만에 다시 만나 한 공간에서 영면에 들었다.

10여 년 전부터 지병으로 투병 생활을 한 김 시인은 지난 8일 오후 4시 81세 일기로 원주시 판부면 자택에서 타계했다. 임종 당시 말도, 글도 남기지 않고 눈을 깜빡,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미소를 짓고서 가족들과 작별했다.

고인의 타계 소식에 빈소가 마련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는 나흘간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낸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손학규·이재오 전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강원도당 상임고문인 이창복 전 국회의원 등 고인과 오랜 세월 친분을 쌓은 원로 정치인들이 빈소를 지키며 애도했다.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4년 강원도 원주로 이주해 원주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중동고를 거쳐 1966년 서울대 미학과를 나와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비'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 등단했다.

1970년 국가 권력을 풍자한 시 '오적'으로 구속되는 필화를 겪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는 등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의 상징이자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주목받았다.

고인은 1980년대 이후 후천개벽의 생명사상을 정립하는 데 몰두했고, 1986년 '애린'을 기점으로 생명사상과 한국의 전통 사상 및 철학을 토대로 많은 시를 쏟아냈다.

대표작으로는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애린' 등의 시집과 산문집 '생명', '율려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2018년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 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 선언을 했다.

고인은 떠났지만 김 시인의 사상·문화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추모행사는 이어진다.

김 시인의 후배 문화예술인과 생명운동가 등은 고인의 49재에 맞춰 다음 달 25일 서울에서 화해와 상생 차원의 추모문화제 '생명 평화 천지굿'을 열기로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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