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수탈 상징 '만경강 철교'…문화·예술 관광지로 부활

임채두 / 2021-10-13 11: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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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만경평야 쌀 옮기려 개통, 1928년 목교를 철교로 재설치
식수 독점용 양수장도…부근의 비비정·문화예술촌도 볼거리
▲ 만경강 철교 [촬영:임채두 기자]

▲ 만경강 철교 [촬영:임채두 기자]

▲ 삼례 양수장 [촬영:임채두 기자]

▲ 비비정 예술열차 [촬영:임채두 기자]

일제 수탈 상징 '만경강 철교'…문화·예술 관광지로 부활

日, 만경평야 쌀 옮기려 개통, 1928년 목교를 철교로 재설치

식수 독점용 양수장도…부근의 비비정·문화예술촌도 볼거리

(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전북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길에 놓인 만경강 철교.

100년도 넘은 유구한 역사 속 철교는 한적한 시골 동네를 묵묵히 지키고 서 있다.

강변의 초록 풀잎과 햇살에 비쳐 반짝이는 윤슬, 푸른 하늘이 조화로운 날에는 철교가 유독 눈에 띈다.

만경강변 언덕에 자리 잡은 비비정(飛飛亭·영조 28년에 세워진 정자)에 오르면 풍경과 함께 철교가 더 선명해진다.

비비정은 최근 들어 관광객들 사이에서 '만경강 포토존'으로 이름 난 곳이다.

폭넓은 만경강을 가로지르는 476m 길이 철교는 2011년 10월에야 비로소 사명을 다했다.

사람도, 기차도 지나지 않는 지금의 철교는 조용히 흐르는 강물에 '못다한 이야기'를 그저 풀어놓을 뿐이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철교는 만경평야의 쌀을 일본 본국으로 실어나르는 수단으로 쓰였다.

비옥한 삼례, 익산에서 재배한 쌀이 철교를 따라 군산항으로 옮겨졌다.

일제는 수탈을 위해 전북 경편철도 주식회사를 차리고 이리(현재의 익산)∼전주간 철도를 개통했다.

이 철도를 이어준 목교가 현재의 만경강 철교다.

호남 지방 농산물 반출이 점차 중요해지면서 일제가 목교를 1928년에 더 튼튼한 재질로 바꾼 것이다.

일제 수탈의 역사를 몸소 증거하는 철교는 국가등록문화재 579호로 지정된 거대한 역사 교과서다.

철교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일제가 쌀을 보관하던 양곡 창고도 아직 남아 있다.

비비정을 중심으로 형성된 철교 옆 '비비정 마을' 역시 착취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당시의 흔적으로 비비정 농가레스토랑 주변 '양수장'과 비비낙안 카페 옆 물탱크가 남아 있다.

삼례읍의 물을 양수장으로 끌어모아 지대가 높은 물탱크로 끌어올려 일본인들의 식수로 사용했다.

물을 관리하려고 양수장 옆에 일본군 고위직의 공관을 뒀다고 한다.

양수장은 철교와 같이 국가등록문화재 제221호로 지정돼 있다.

삼례읍 주민들은 자연스레 물 부족에 시달렸다.

삼례에서 나고 자랐다는 박인환(72)씨는 물을 긷기 위해 동네 주민들이 매일 새벽 우물 주변으로 모였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서 듣곤 했다.

박씨는 "그 옛날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일제의 탄압에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먹을 것 못 먹었다"며 "아버지는 일제로부터 쌀과 농산물을 빼앗긴 피해자"라고 한탄했다.

돌산이 있던 자리에 양수장을 만든 터라 이 주변에 일제가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한 흔적이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안미옥 비비정마을 이장은 "지금은 땅을 다지고 보도블록을 깔아 찾아볼 수는 없지만, 그 옛날 일본인들이 양수장을 만들려고 돌산을 폭파했다고 한다"며 "이 마을에는 아직 일본인들이 쓰던 적산가옥도 많다"고 말했다.

쓰린 상처를 안고 있던 철교와 마을에는 2017년부터 '예술'이란 옷이 입혀졌다.

만경강 철교 위 멈춰버린 낡은 새마을호 4량이 '비비정 예술열차'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꾸며졌다.

1량은 식당, 1량은 수공예품 갤러리, 2량은 카페로 조성됐다.

완주군이 문화 공간 조성과 마을 관광 활성화 방안을 고민한 결과다.

4량 어디서든 만경강의 탁 트인 경관을 감상할 수 있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뷰(view) 맛집'으로 입소문을 탔다.

완주 근교의 전주, 군산, 익산은 물론 수도권 등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린다고 한다.

철교의 역사도 예술열차 옆에 선간판을 세워 알리고 있다.

육근영 비비정 예술열차 대표는 "마을 주민들이 예술열차를 수탁 운영하면서 소상공인 지원을 받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수익이 나고 있다"며 "철교 위에 조성된 카페와 식당은 유독 아름다운 만경강 경관 덕에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제가 만든 양곡 창고도 2018년 전시회, 공연이 열리는 '삼례문화예술촌'으로 조성됐다.

오욕의 수탈 역사를 잊지 않으려던 완주군은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자'는 취지로 양곡 창고를 예술공간으로 꾸몄다.

지난해 기준 600여회 각종 공연을 포함해 100여회의 전시회와 20회의 명사 특강 등이 개최됐으며 15만1천여명의 관광객·관람객이 다녀갔다.

완주군 관계자 "만경강 철도와 삼례문화예술촌, 비비정으로 이어지는 마을 전체를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라며 "특히 비비정 예술열차 옆 철길은 주민이 쉬거나 걸을 수 있는 '상생거리'로 꾸미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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