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가려진 60년대 런던의 살풍경…'라스트 나잇 인 소호'

오보람 / 2021-11-26 14: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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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 포스터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속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낭만에 가려진 60년대 런던의 살풍경…'라스트 나잇 인 소호'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1960년대 런던은 영국 노년 세대에게는 향수를, 청년 세대에는 낭만을 느끼게 하는 시대다.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가 유럽을 넘어 세계를 휩쓸고 패션 디자이너 메리 퀀트의 미니스커트가 대유행하는 등 자유로운 청년 문화가 만개했다. '스윙잉 식스티즈'(Swinging Sixties)라 불린 이 역동적이고 화려한 문화를 동경한 영국의 젊은이들은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향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드거 라이트 감독은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를 통해 당시 런던의 모습을 한 꺼풀 벗겨 이면에 자리 잡고 있던 살풍경을 드러냈다. 특히 남성들의 폭력으로 꿈이 좌절되고 비극을 맞는 여성의 삶에 눈을 맞췄다.

Z세대 시골 마을 소녀 엘리(토마신 매켄지)는 패션 학교에 합격해 부푼 꿈을 안고 런던으로 향하지만, 기숙사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결국 따로 집을 얻어 살기로 한다. 주인 할머니 알렉산드라(다이애나 리그)가 1층에 사는 집은 고전적인 매력으로 가득해 엘리의 마음에 쏙 든다.

하지만 이사 첫날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잠이 드는 순간 60년대로 타임슬립을 하는 것이다. 평소 레트로 음악과 패션을 즐기던 엘리는 과거 자신의 방에 살면서 가수를 지망하는 젊은 여성 샌디(애니아 테일러 조이)를 관찰하는 재미에 푹 빠진다. 유흥, 향락, 꿈, 로맨스가 뒤범벅된 런던 번화가 '소호'를 체험하고 자신과 전혀 다르게 밝고 화려한 샌디를 보면서 흐뭇해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샌디의 삶은 점점 수렁에 빠진다.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었던 연인 잭(매트 스미스)은 수많은 남자에게 샌디를 상납하고 폭력을 일삼기까지 한다. 샌디의 삶은 가수가 아니라 창녀와 닮아간다. 샌디의 고통은 엘리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심지어 기괴한 모습의 남자 유령들이 보이고 환청도 들리면서 엘리는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진다.

영화에는 여성문제와 꿈, 시간여행, 유령, 환각 등 많은 소재가 등장해 전개가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라이트 감독은 꽉 짜인 연출로 뚝심 있게 앞만 보고 질주한다. 짙게 깔린 미스터리와 기묘한 분위기는 2시간 동안 관객의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화려함과 혼란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촬영 기법은 영화 '신세계', '올드보이 등을 찍은 정정훈 촬영감독의 손에서 나왔다. 라이트 감독은 정 감독이 촬영한 '아가씨'를 보고 감명을 받아 직접 러브콜을 했다고 한다.

배우들의 호연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토마신 매켄지는 불안한 시절을 보내는 엘리의 분신이 된 것처럼 역을 소화했고, 애니아 테일러 조이 역시 명랑함과 광기를 오가는 연기로 히트작 '퀸스 갬빗' 때와 180도 다른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다이애나 리그는 자신의 마지막 영화인 이 작품에서 비밀스럽고도 서늘한 연기로 관객에게 충격적인 반전 결말을 선사한다. 60년대 유행했던 더스티 스프링필드, 피터 앤드 고든, 워커 브라더스 등의 음악과 과거 소호 거리를 재현한 세트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12월 1일 개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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