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 대가 박서보 "21세기 미술은 치유의 예술이어야"

강종훈 / 2021-09-15 1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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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개인전 'PARK SEO-BO' 개막
▲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박서보 작가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PARK SEO-BO(박서보)'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1.9.15

▲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여는 박서보 화백

▲ 박서보 개인전 설치 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단색화 대가 박서보 "21세기 미술은 치유의 예술이어야"

국제갤러리 개인전 'PARK SEO-BO' 개막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내가 지구에서 살 시간이 많지 않아요. 죽어서 무덤 속에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2019년 시작한 내 인생을 건 작업이 올해 연말쯤 완성될 것입니다."

한국 현대미술의 산 역사인 박서보(90) 화백은 구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뜨거운 예술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15일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한 개인전 'PARK SEO-BO' 전시장을 찾은 작가는 "늙어서 다리에 힘이 없어서 자꾸 자빠지고 걷는 것도 점점 힘들어진다. 며칠 전에도 자빠져서 왼팔 세 군데가 찢어져서 꿰맸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예전처럼 바닥에 놓고 크게 움직이면서 작업은 못 하고 지금은 이젤에 놓고 5시간 정도씩 서서 그릴 수밖에 없다"라며 "그럼에도 세계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밀도감을 드러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200호 크기의 대작을 작업 중이라고 소개한 그는 내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작품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박서보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단색화 대가로 불린다. 수행하듯 반복해서 선을 긋는 '묘법' 연작이 대표작이다.

1970년대 초기 묘법은 어린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해 캔버스에 물감을 칠한 뒤 연필로 선 긋기를 반복한 작업으로, 자신을 비우고 수신하는 과정에 중점을 뒀다.

2000년대 이후 색채 묘법은 손의 흔적을 강조하는 대신 일정한 간격의 고랑으로 형태를 만들고 풍성한 색감을 강조한다.

작가는 두 달 이상 물에 불린 한지 세 겹을 캔버스 위에 붙이고, 표면이 마르기 전에 굵은 연필로 선을 그어 나간다. 농부가 논두렁을 갈듯 연필로 선을 그으면 한지가 좌우로 밀려 산과 골 형태가 만들어진다. 물기를 말린 후 표면에 아크릴 물감을 칠한다.

연필로 긋는 행위를 반복해 완성한 작품에는 축적된 시간이 덧입혀진다. 동시에 작가가 경험한 자연경관, 그의 철학과 사유가 담긴다.

박서보는 "그림은 수신(修身)을 위한 수행의 도구라고 생각한다"라며 "서양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지만, 나는 반대로 나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비워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엄청나게 변화 속도가 빠른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에게 스트레스가 쌓여 지구가 '스트레스 병동'이 됐다"며 "21세기 미술은 치유의 예술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헉헉대는 사람들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아픔을 가중하는 폭력적인 예술은 존재해선 안 되며, 그림으로 불안한 사람에게 평화와 행복을 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1970년대 초기 묘법 연작에서 작가는 색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 위해 흰색을 선택했다. 2000년대 이후 디지털 문명을 접하며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던 작가는 색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그는 "아날로그 시대에 성공적으로 살았지만, 21세기에 살아날 자신이 없었고 지난 성공을 다 망칠 것 같은 불안에 떨었다"라며 자연에서 배운 색으로 극복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그림이 흡인지처럼 보는 사람의 고뇌 같은 것을 빨아들여야 한다"며 "나는 자연의 색채를 화면으로 유인해 색채로 사람들을 치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색채 묘법'으로 알려진 2000년대 이후 근작 16점을 소개한다. "자연이 나의 스승"이라는 작가가 공기색, 벚꽃색, 유채꽃색, 와인색, 홍시색, 단풍색, 황금올리브색 등 온갖 자연의 강렬한 색감을 화면에 옮긴 전시장에는 생명의 에너지가 넘친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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