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 풍요와 맞바꾼 건강권·자치권…미·소 '플루토피아'

임형두 / 2021-11-24 15: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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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플루토늄 도시 다룬 케이트 브라운 교수 저서 출간
▲ 해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원자로 공장에서 좋은 보수를 받으며 일하는 소련 오조르스크의 노동자들이 숲에서 단체 도보를 하고 있다. [푸른역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물질적 풍요와 맞바꾼 건강권·자치권…미·소 '플루토피아'

냉전시대 플루토늄 도시 다룬 케이트 브라운 교수 저서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원자력은 인간에게 전력, 핵무기 재료 등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비용이 만만찮다. 방사선 피폭에 의한 질병,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에 따른 엄청난 후유증은 원자력이 정말로 저렴하고 안전한 평화적 기술인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관련해 2022년 대선후보의 원전 정책도 서로 엇갈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탈원전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하는 반면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탈원전 포퓰리즘' 정책을 폐기하고 스마트 미래형 원전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외친다.

핵역사, 재난사 등을 주제로 환경사와 냉전사 강의·연구에 전념하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케이트 브라운 교수가 쓴 '플루토피아'가 최근 국내에서 출간됐다.

원자력 재난의 비교사를 통해 반핵과 찬핵의 이분법을 넘어 원자력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효용이 특정인들에게 개인화하고 비용은 사회화되는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원전 문제는 이제 특정 국가나 지역만의 일이 결코 아니다. 지난 4월, 일본 정부는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공식 결정했다. 2023년부터 100만 톤 이상의 오염수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바다로 방출하겠다는 것이다. 원전 재난과 그 피해가 우리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일깨워주는 사례다.

이 책은 자연 환경으로의 방사성 물질 방류 결정과 인체에 미치는 그 영향에 대한 축소화·안심시키기가 이미 1940년대부터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시작됐고, 방류의 참혹한 결과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재진행형 역사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제목 '플루토피아(Plutopia)'는 '플루토늄(plutonium)'과 '장소(topia)' 또는 '이상향(utopia)'의 합성어로, 저자가 창안했다. 이 책은 미·소 양국 지도자들이 핵탄두의 양산·비축을 위해 어떻게 비용을 최소화했는지, 그리고 비판을 어떻게 반박하며 핵가족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웠는지 꼼꼼히 살핀다.

관습적으로 냉전은 미국과 소련이 중심이 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 간의 대결로 설명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소 동맹관계가 해체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 국가들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 공산정권 사이에 냉전 구도가 생겼고,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면서 이런 구도가 강화됐다는 식이다.

하지만 모든 부문이 대결만으로 점철되진 않았다. 특히 미·소가 핵무기 개발을 위해 만든 플루토늄 도시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동일했다. 플루토늄 생산 공장 근처의 지역사회들이 놀라울 정도로 서로 닮아 있었다는 얘기다. 미국 워싱턴의 리치랜드와 소련 우랄의 오조르스크가 바로 그렇다.

냉전기에 양국은 군사·복지 부문에서 경쟁하면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공장 주변에 이상향에 가까운 복지 도지 '플루토피아'를 건설했다. 이곳 주민들은 조국을 위해 플루토늄을 만들면서 '소비자적 권리'인 풍요를 제공받았다. 하지만 그 대가로 '생물학적 권리'인 건강과 '정치적 권리'인 자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원자력 시설에서의 끔찍한 사고와 인근으로의 방사성 물질 유출, 그리고 그 대비와 감시의 부재는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준위 방사성 물질의 유출과 그에 일상적으로 노출됐을 때 발생하는 재난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번 책은 그 같은 일상적 저준위 원자력 재난의 연대기를 비교사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플루토피아 내부의 시민과 인민들이 복지 유토피아를 누리는 대가로 자신들의 시민적·생물학적·정치적 권리를 '자발적으로' 내놓았음을 새롭게 밝힌다.

미국과 소련의 플루토피아 주민들은 지역 자치와 선거, 국가적 행정 제도상의 편입, 구조적으로 피폭되지 않고 건강하게 살 권리를 정부의 주택 보조금, 풍부한 재화의 구입, 우수한 치안, 자녀 교육의 혜택 등의 편익과 맞바꿨다. 이런 목소리는 냉전과 탈냉전기에 이르기까지 국가 안보의 수사를 통한 지역 내 원자력 시설의 유지 강화(미국 리치랜드)와 외부인의 접근과 거주를 차단하는 폐쇄 도시 선호(소련 오조르스크)로 나타났다. 이런 '혜택' 속에서 원자력 시설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더 큰 피해를 받게 됐다.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가 돼버린 것이다.

저자는 책의 서론에서 "나는 노동자들을 플루토늄 생산과 관련된 위험과 희생에 동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미국과 소비에트의 원자력 지도자들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플루토피아다"며 "플루토피아 특유의 접근이 제한된, 열망으로 가득한 공동체들은 전후 미국과 소비에트 사회의 욕구 대부분을 충족시켰다. 플루토피아의 질서정연한 번영은 대다수 목격자들이 그들 주변에 쌓여 있는 방사성 폐기물을 간과하게 만들었다"고 안타까워한다.

우동현 옮김. 푸른역사 펴냄. 784쪽. 3만8천900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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