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이 꿈꾼 불국토 모습은…한눈에 보는 불교미술 정수

박상현 / 2021-11-24 18: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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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불교사원실' 공개…신라 대표 사찰 유물 선보여
▲ 봉화 서동리 동삼층석탑 사리장엄구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24일 공개한 불교사원실에 봉화 서동리 동삼층석탑 사리장엄구가 전시돼 있다. 녹색 사리병 주변에 작은 탑들이 있다.

▲ 황룡사 사리장엄구 중 백자 항아리와 조개껍데기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24일 공개한 불교사원실에 황룡사 구층목탑에서 나온 자그마한 백자 항아리와 조개껍데기가 전시돼 있다.

▲ 황룡사 반가사유상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24일 공개한 불교사원실에 놓인 황룡사 반가사유상.

▲ 경주 갑산리 전불 (경주=연합뉴스) 국립경주박물관이 황룡사를 비롯한 신라 주요 사찰에서 수습한 유물 530여 점으로 꾸민 '불교사원실'을 24일 새롭게 공개했다. 사진은 경주 안강읍 갑산리 전불. 2021.11.24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감은사 사리장엄구와 녹유신장상 전시된 불교사원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24일 공개한 불교사원실에 감은사 사리장엄구와 사천왕사 녹유신장상이 보인다.

신라인이 꿈꾼 불국토 모습은…한눈에 보는 불교미술 정수

국립경주박물관 '불교사원실' 공개…신라 대표 사찰 유물 선보여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보다 늦은 법흥왕(재위 514∼540) 시기에 불교를 공인해 곳곳에 절을 세웠다. 왕성인 월성 주변은 물론 경주 남산과 낭산, 토함산 등지에 사원을 지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시대 경주에는 '별처럼 많은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탑과 불상 같은 유물이 남은 사찰은 50곳 정도 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신라가 망하고 1천 년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건축물은 대부분 사라졌다. 일부 석탑이나 건물 기초부가 존재하기는 하나, 옛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신라 주요 사찰에서 나온 문화재 530여 점을 한자리에 모은 불교사원실을 24일 공개했다. 불교사원실은 신라미술관 2층 '황룡사실'과 '국은기념실'을 합쳐 새롭게 조성한 공간이다.

구층목탑이 있었던 황룡사를 비롯해 분황사, 사천왕사, 감은사, 흥륜사 등 신라 대표 사찰에서 발견된 기와, 전돌(벽돌), 조각상, 불상, 사리장엄구를 전시해 신라인들이 염원한 불국토(佛國土)를 떠올려볼 수 있도록 했다. 불국토는 부처가 머물거나 교화하는 땅을 뜻한다.

신라 사찰의 웅장함은 불교사원실 입구에 있는 황룡사 '치미'를 통해 알 수 있다. '망새'라고도 하는 치미는 지붕에 올린 장식기와로, 황룡사 치미는 높이가 182㎝에 이른다.

전시실로 입장해 석조 유물을 감상하고 나면 중앙부에 황룡사 구층목탑 사리장엄구가 보인다. 사리장엄구는 부처나 고승의 유골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용기와 물품으로, 정성과 공력이 담긴 당대 미술품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사리공(舍利孔·사리를 넣기 위해 뚫은 구멍)에 넣었던 화려한 공양품 사이에서 눈에 띄는 유물은 높이 7.8㎝인 자그마한 백자 항아리다. 그 옆에는 항아리에서 나온 하얀색 물질 3개가 있다. 그동안 이 물질의 정체를 두고 사리 혹은 나쁜 기운을 억누르는 진단구라는 설이 제기됐다.

신광철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흰색 물질 성분은 조개껍데기로 분석됐다"며 "사리 기능으로 넣었는지, 아니면 진단구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백자 항아리와 크기가 유사한 황룡사 반가사유상 머리 조각도 눈길을 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사유의 방'에서 공개한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처럼 압도적 미감을 주지는 않지만, 옅은 미소가 인상적이다. 검은색 배경 앞에 불상 하나만 덩그러니 전시해 근심을 잊고 한동안 바라보게 된다.

경주 갑산리 갑산사 터에서 나온 전불(塼佛·불보살을 부조로 나타낸 벽돌)도 황룡사 반가사유상처럼 작지만 매혹적이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돌의 한쪽 면에 부처와 보살을 새겼다. 몸이 길쭉하고 옷자락 표현이 섬세한 점이 특징이다.

김혜원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과장은 "전불은 건물 장식에 썼을 것으로 짐작된다"며 "부처가 오른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갑산사 전불 옆에 진열된 사천왕사 녹유신장상(綠釉神將像·녹색 유약을 바른 불교 수호신 조각상)은 친근감보다는 위엄을 느끼게 한다. 조각승 양지가 만들었다고 전하며, 신라시대 불교조각 중 걸작으로 꼽힌다.

사리장엄구는 황룡사 출토품뿐만 아니라 분황사, 감은사 등에서 발견된 유물도 전시됐다. 분황사 사리장엄구 중에는 형태가 비교적 온전한 조개껍데기도 있다.

전시장 마지막 부분에는 1962년 봉화 서동리 동삼층석탑을 수리할 때 나온 유리 사리병과 작은 탑이 있다. 흙으로 만든 탑은 99개가 수습됐다.

신 연구사는 "8세기 초 중국에서 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영향으로 통일신라시대 후기에는 사람들이 다라니(불교의 비밀스러운 주문)를 넣은 작은 탑을 봉안하며 공덕을 쌓고자 했다"며 "작은 탑의 바닥 구멍에 다라니를 적은 종이를 말아 끼워 넣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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